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친구들과 함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그저 장발장이 빵을 훔쳐 19년이나 감옥에 간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합창 소리는 어린 마음에도 큰 떨림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의 배경을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오해하지만, 실제 무대는 그보다 43년 후인 1832년 6월에 벌어진 봉기입니다. 이 혁명은 역사적으로 실패로 기록되었지만, 그 실패가 모여 결국 16년 후 진정한 공화정을 열었습니다.

1832년 6월 봉기, 왜 일어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프랑스 민중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혁명 직후 권력 투쟁으로 경제가 무너졌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최고 가격제 폐지로 물가는 미친 듯이 치솟았습니다. 장발장이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시기가 바로 1796년, 혁명 직후였습니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후 유럽 군주들은 루이 18세를 왕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1824년 즉위한 샤를 10세는 성직자 권한을 확대하고, 망명 귀족들의 토지를 보상해 주며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1830년 선거에서 공화파가 압승했지만,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출판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부유한 지주들에게만 선거권을 주고 입법권마저 독점하려 했죠.
참다못한 시민들이 1830년 7월 28일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3일간 이어진 이 혁명은 '영광의 3일'이라 불리며, 외젠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바로 이 순간을 담았습니다. 샤를 10세는 영국으로 망명했고, 루이 필리프가 새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이 필리프는 세금 200프랑 이상을 내는 25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허락하며 군주제를 유지했습니다. 혁명은 왕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돈 많은 자본가들에게만 선거권이 확대된 것이었습니다.
실패한 혁명, 바리케이드의 진실
1832년 6월 5일, 공화주의 정치인 라마르크 장군이 사망했습니다. 그의 장례 행렬이 군대에 둘러싸여 파리 시내를 지나갈 때, 곳곳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외치는 비장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노동자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혁명군은 좁은 골목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고 붉은 깃발을 꽂았습니다.
당시 빅토르 위고는 정원에서 희곡을 집필하다 총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공원 관리자들이 그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위고는 집으로 가는 대신 빈 거리를 가로질러 총소리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파리의 절반이 이미 군중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였죠.
정부군과 혁명군의 시가전은 처절했습니다. 양측 사상자가 800여 명에 달할 만큼 격렬했지만, 혁명은 막강한 정부의 탄압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앙졸라, 마리우스 같은 청년들이 실제로 그 바리케이드 위에 있었습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혁명군 청년들이 '민중의 노래'를 부를 때 느꼈던 전율은, 아마도 이들이 차가운 길 위에서 쓰러져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간절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민중의 노래, 결국 해는 떠올랐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모습을 이 작품에 담았습니다. 장발장과 판틴은 혁명으로 인한 경제 붕괴와 산업화의 회생자였고, 테나르디에 부부는 빈민가의 불한당으로 전락한 평범한 사람들을 상징했습니다.
특히 자베르 경감에 대한 해석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악역이 아니라, 가난을 '게으름과 악함'으로 치부하던 당시 지배 계층의 냉혹한 논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자베르의 엄격한 정의와 장발장의 숭고한 자비가 충돌하는 지점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1832년 6월 봉기는 실패했지만, 16년 후인 1848년 2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루이 필리프를 끌어내리고 드디어 왕정을 폐지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레미제라블 마지막 장면에서 사망한 장발장이 혁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바로 이 역사를 예견한 것입니다. 실패가 모여 승리를 만든다는 역사의 역설이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빅토르 위고는 "가장 어두운 밤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해는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굶주림과 차별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총칼 앞에 나설 수 있었던 유일한 동력은 바로 '내일은 오리라'는 희망이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지금까지 37년간 53개국 22개 언어로 공연되며 총 1억 3천만 명이 관람한 뮤지컬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민중이 일궈낸 가슴 벅찬 혁명의 그날을, 우리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