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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벼랑 끝에서 쏘아 올린 신화: <라퓨타> 탄생의 기적(제작 비화, 상징과 메시지, 캐릭터 분석)

by woozoo100 2026. 2. 16.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립 작품이자, 감독 개인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탄생한 기념비적인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작품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오만함과 대지를 떠난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면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자연과의 공존과 노동의 가치를 전달합니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삼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는 세대를 넘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대표 포스터

제작 비화: 파산 위기에서 탄생한 지브리의 시작

'천공의 성 라퓨타'의 제작 배경은 그 자체로 극적인 드라마입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대성공으로 큰돈을 벌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는 허세에 취해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평생의 라이벌이자 선배였던 타카하타 이사오의 다큐멘터리 '야나기와 수로 이야기'에 투자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했고, 하야오가 투자한 모든 돈을 소진했음에도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집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의 편집장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갔고, 스즈키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게 아니라 당신이 영화 한 편을 더 만들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하야오가 꺼낸 시나리오가 바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구상해 온 '천공의 성 라퓨타'였습니다. 문제는 어떤 스튜디오도 하야오의 까다로운 작업 방식과 태도를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완벽주의적인 사람이란 것이 이미 너무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직접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결심했고, 타카하타 이사오까지 섭외해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설의 시작점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타카하타의 다큐멘터리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되려 3억 6천만 원의 빚을 지게 만들었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제작비로는 42억 원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야오는 '나우시카'의 두 배에 달하는 예산을 책정하며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상업적 성공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그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작품에 깊은 철학과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타겟층을 성인이 아닌 초등학생 아이들로 설정한 것입니다. 하야오는 아이들이 오면 부모가 동반하게 되어 관객 수가 배가 되고,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폭력성과 선정성이 낮아 TV 방영과 비디오 판매로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토시오는 이와 정반대로 성인을 타겟으로 마케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사랑을 위해 싸우는 사나이의 로맨스"처럼 홍보하며 지금의 포스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 때문인지 극장 개봉 성적은 관객 수 77만 명, 흥행 수익 110억 원에 그쳤습니다. 제작비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지만,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면 회사의 빚을 탕감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며 TV 방영을 통해 사회 현상급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시타와 파즈가 '바루스'를 외치는 순간에 맞춰 트위터에 '바루스'를 게시하는 유저 수가 2013년에는 초당 14만 건을 기록하며 트위터 서버를 마비시켰고, 이는 지금까지도 세계 최다 동시 트윗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본 특허청이 '바루스'의 상표 등록을 "공공의 자산이나 다름없는 문화적 현상"이라며 거절한 일화는 이 작품의 문화적 영향력을 잘 보여줍니다.

구분 내용
제작 계기 타카하타 이사오의 다큐멘터리 투자 실패로 인한 재정 위기
제작비 약 42억 원 (나우시카의 2배)
개봉 성적 관객 77만 명, 흥행 수익 110억 원
문화적 성과 '바루스' 세계 최다 동시 트윗 기네스북 등재

상징과 메시지: 문명의 양면성과 자연으로의 회귀

'천공의 성 라퓨타'는 제목부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라퓨타는 고도로 발전된 문명과 살상 병기로 세상을 지배하던 국가였지만 결국 멸망했습니다. 설정집에 따르면, 라퓨타는 수천 년 전부터 하늘을 호령하며 세상을 지배했으나 비행석의 남용으로 기상 이변이 발생했고 대부분의 섬들이 지상에 추락했습니다. 왕가가 살던 라퓨타를 포함한 몇몇 섬이 살아남았지만, 대지를 떠나 무균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의 면역 체계가 완전히 퇴화되었고, 전염병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는 대지를 벗어나 높이 비상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파괴와 지배를 자행하는 오만이 결국 파멸을 초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라퓨타의 왕은 어쩔 수 없이 백성들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고, 보복을 두려워해 시타가 살고 있던 곤도아 계곡에 몰래 숨어 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왕가는 두 파로 분열됩니다. 라퓨타의 힘이 다시는 악용되지 못하도록 비행석의 존재와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자는 쪽과, 언젠가 다시 라퓨타로 돌아가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쪽입니다. 시타와 무스카가 한 왕가의 핏줄이면서도 다른 신념을 가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본명을 비교해 보면 왕가의 직계 혈통은 시타 쪽이었기 때문에 비행석의 결정이나 주문은 시타 쪽에 전해졌고, 무스카는 공부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으나 정작 실행할 수 없는 허울뿐인 왕가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라퓨타의 형태는 상층부에 거대한 정원과 주거 공간이, 하층부에는 지상 문명을 파괴하기 위한 고대 무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문명의 양면성을 상징합니다. 로봇 병의 디자인은 시계태엽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능력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 형태는 1941년 슈퍼맨 애니메이션의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설정상 AI 생체 컴퓨터로 신체는 금속, 고무, 세라믹을 조합해 만들어졌으며, 내장된 비행석 덕분에 날개 없이도 비행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로봇병이 인간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자연을 돌보는 모습은 같은 도구라도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며,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쓸쓸한 질문을 던집니다. 라퓨타의 형태는 하늘에 닿기 위해 높이 쌓았으나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던 하느님에 의해 무너진 바벨탑에서 디자인을 차용했으며, 부분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치비타 디 바뇨레죠와 프랑스의 몽생미셸을 참고했습니다. 거대한 세계수가 지붕처럼 건물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천장이 깨지며 나무가 뚫고 나간 모습과 하층부 무기들이 떨어진 후 아래로 길게 늘어진 뿌리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솟은 건축물과 땅을 향해 늘어진 뿌리의 방향성을 통해 하늘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대지를 향해 정착하려는 자연의 본능을 대비시킨 것입니다. 시타와 파즈가 멸망의 주문을 외쳐 붕괴되는 순간에도 뿌리와 가지들이 라퓨타를 잡고 있는 모습, 두 사람이 세계수의 뿌리에 걸려 살아남은 장면은 주인공 보정이 아니라 대지를 향해 뿌리내리는 자연의 방식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라퓨타'는 스페인어로 매춘부, 창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 작품은 해당 국가에서 '천공의 성'으로만 표기되어 수출되었습니다. 하야오도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뜻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차례 해명했습니다. 사실 '라퓨타'는 하야오가 창작한 이름이 아니라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3권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1726년 작품으로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원작에서도 라퓨타는 하늘의 통치자라는 뜻을 담고 있었기에 하야오는 이 신비로운 단어에 매료되어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걸리버 여행기에서도 라퓨타는 세상을 지배하는 국가로, 반란을 일으킨 도시에 돌을 던지거나 태양과 비를 차단해 굶겨 죽이고 최악의 경우 도시를 뭉개버리는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원작자는 그들을 비판하며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 위해 일부러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언어 천재였던 스위프트가 작품에 언어유희적 단어들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했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만 이를 몰랐던 것입니다.

캐릭터 분석: 노동의 가치와 눈먼 권력의 대비

'천공의 성 라퓨타'의 캐릭터들은 각각 명확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라퓨타를 멸망시킨 주문 '바루스'는 라퓨타 언어로 '닫다', '봉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평화를 상징하는 터키어 '바르슈'에서 어원을 따왔습니다. '바'로 시작해서 '스'로 끝나는 짧은 음성 구조가 폭발과 비산을 연상시켜 무언가 끝났다는 느낌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루스가 분명 멸망의 주문인데 단어의 뜻은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문은 본래 라퓨타 왕가가 섬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최후 안전장치였으나, 정작 이를 외친 것은 시타와 파즈, 두 순수한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이는 어른들의 탐욕과 지배 욕망을 무해한 아이들과 대비시킴으로써 그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각인시킵니다. 바루스는 단순 멸망의 주문이 아니라 세상을 호령했던 라퓨타의 후손 시타와 땅의 주민을 대표하는 파즈가 함께 외친 해방과 평화의 주문이자, 선조들의 죄를 대신 뉘우치고 탐욕의 굴레를 끊어내는 속죄 의식입니다. 동시에 대지에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강력한 선언이기에 평화라는 의미에서 어원을 따온 것입니다. 하야오는 이런 감정의 폭발과 장면의 희열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의 인트로부터 신경 써서 연출했습니다. 시타가 떨어진 슬래그 협곡은 과거에는 은광석이 채굴되던 광산이었으나 이제는 찌꺼기밖에 남지 않은 가난한 탄광 마을입니다. 그녀가 마을에서도 가장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라퓨타 왕가의 운명을 비유합니다. 하지만 하야오는 비행석의 신비로움을 더해 차갑고 냉혹한 하늘에서의 추락이 아니라 따뜻하고 온정 넘치는 대지로의 여정처럼 묘사했습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시타를 붙잡는 파즈의 모습은 라퓨타의 후손이 대지의 생명력을 조우하는 순간이자, 대를 이은 굴레로 고통받던 라퓨타인들의 죄가 드디어 구원받을 거라는 암시였습니다. 슬래그 협곡의 풍경은 온통 거칠고 투박한 기계들로 가득합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만 작동하는 기계들을 자칫 사고로 이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묘사한 것은 인간이 배제된 채 자동으로 움직이는 라퓨타의 최신 장치들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곳의 기계 장치들은 대지에 뿌리내려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강인한 생명력, 노동의 가치를 비유합니다. 동시에 라퓨타가 멸망한 이유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편집되었지만 대본집에는 무스카가 "2500년 전 라퓨타에는 사람이 없어졌지. 봐라! 이 뛰어난 기계들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노동의 숭고함을 잃은 최첨단 기술이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AI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감독은 파즈가 살고 있는 슬래그 계곡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실제 영국의 탄광지역 웨일스 마을을 2주간 답사했습니다. 당시 웨일스는 탄광 폐쇄에 반대하는 광부들의 시위와 파업이 한창이었고, 하야오는 무너져가는 산업 속에서도 공동체와 일자리를 지키려는 광부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회의적인 어른들과 이를 보고 자라 똑같은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이 감정을 꼭 전달하고자 파즈와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따뜻한 온정으로 서로를 돌보고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광부가 근육을 자랑하며 맞서는 장면은 단순 개그가 아니라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노동계급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고, 파즈는 부모도 없이 혼자 살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당차게 살아가는 아이로 그려집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트럼펫을 불며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신성하게 묘사한 것도 숭고한 노동의 가치와 강인한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도라의 캐릭터는 작품에 재미와 감동을 더합니다. 처음에는 악역인가 싶었지만 뒤로 갈수록 따뜻하고 인정 많은 어른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국가 기밀을 캐던 스파이로 변장과 암호 해독에 능했으며, 아들 중 루이는 스페인 첩보 활동 중 만난 남자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야오는 원래 도라를 젊은 남자 해적으로 그리려 했으나 그렇게 되면 시타를 꼬시려 할 것 같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꿈꾸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며 "자식들보다 강인한 노인을 그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고,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나이를 드셨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도라를 완성했습니다. 하야오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결핵으로 병상에 누워있다 사망했지만 도라처럼 강인하고 대담한 성격이었으며, 말투나 결단력, 카리스마까지 도라보다 훨씬 무서웠다고 합니다. 작중 도라의 방에 걸린 젊은 시절 모습은 하야오의 어머니를 그린 것이고, "시타가 우리 엄마처럼 되냐"며 충격받는 아들의 말은 하야오의 바람이 투영된 것입니다. 무스카는 라퓨타의 힘을 되찾아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에 눈이 먼 캐릭터입니다. 멸망한 조국에 대한 집착은 전쟁에 패전해 자신감을 잃었지만 제국주의적 환상에 여전히 젖어 있는 일본의 뒤틀린 민족주의를 상징하며, 그의 복장도 과거 나치나 일본 군부가 즐겨 입던 것과 흡사합니다. 이름 뜻만 봐도 그는 정통성을 가진 라퓨타의 후손이 아니었기에 시타에 대한 강한 열등감을 가졌고, 야망을 실현하고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때문에 시력이 저하되어 안경을 쓰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이 안경은 단순 소품이 아니라 그가 가진 운명적·문명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고대 기술과 라퓨타에 대해서는 해박하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나 생명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장치였습니다. 기술이라는 안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먼 권력을 비웃는 소름 돋는 연출입니다. 시타와 파즈가 바루스를 외쳤을 때 뿜어져 나온 광휘가 무스카의 안경을 산산조각 낸 것은 라퓨타를 움직이던 지배 기술이 자연의 순리로 회귀되는 순간 무스카의 삐뚤어진 야망이 산산조각 났음을 상징합니다. 그가 눈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자신이 그토록 숭상하며 지배하려던 문명의 빛에 역설적으로 눈이 멀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무기들을 바다에 떨구고 날아오른 라퓨타가 결국 우주까지 날아간 것처럼 묘사된 것에 대해 하야오는 아이들이 "라퓨타에 살고 있는 사막 여우와 새들은 다 죽는 거예요?"라며 슬퍼하는 걸 보고 "역시 결말은 이게 맞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뿌리내린 대지를 상실하면 생명과 자연을 잃을 수 있다는 슬픔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다면 작품을 만든 이유는 충분히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인간의 탐욕과 지배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을 경고하면서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m5W4Sjgxc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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