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크루엘라>는 단순한 빌런 오리진 스토리를 넘어, 상처를 동력 삼아 성공한 이들이 마주하는 실존적 고독을 예리하게 그려냅니다. 1970년대 런던 패션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에스텔라라는 예술적 소녀가 크루엘라 드 빌이라는 괴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성공 신화가 감추고 있는 어두운 이면을 드러냅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한(恨)' 정서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서사에 투영된 이 이야기는, 특별함이 우월함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포착하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무기화된 트라우마: 성공의 연료이자 영혼의 독
<크루엘라>는 전형적인 언더독 스토리의 구조를 따릅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에스텔라는 호라스와 제스퍼라는 따뜻한 두 사람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녀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본 패션계 거장 바로네스 남작 부인은 에스텔라를 고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에스텔라는 극심한 착취와 왕따를 경험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자신이 당한 차별과 고통을 성공의 연료로 삼는 현상을 '웨포나이즈드 트라우마(weaponized trauma)', 즉 무기화된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영화는 이 무기화된 트라우마가 에스텔라를 런던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그녀를 인간성을 상실한 크루엘라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바로네스와의 패션 경쟁 장면에서 에스텔라는 자신의 가난에 대한 경험과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승화시킵니다. CG애니메이션과 정교한 스테이징을 통해 구현된 이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압도적이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점점 더 깊어지는 고립과 냉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런던은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알렉산더 맥퀸 같은 디자이너들이 귀족적 쿠튀르 패션에 도전하며 펑크록 패션으로 혁명을 일으키던 시대였습니다. 에스텔라가 바로네스에게 도전할 때 선보이는 많은 패션들은 실제로 이들의 미학을 차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반항과 혁신으로 시작한 이들이 권력을 얻은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조차 성공 이후 '나는 독특하다'가 아이덴티티가 되면서, 아방가르드가 차별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단계 | 에스텔라의 상태 | 관계의 변화 | 결과 |
|---|---|---|---|
| 초반 | 순수한 예술가 | 호라스, 제스퍼와 가족 | 행복하지만 가난함 |
| 중반 | 트라우마 무기화 | 동료에서 직원으로 | 성공하지만 고립됨 |
| 최종 | 나르시시즘의 정점 | 하수인으로 전락 | 권력을 얻었지만 영혼 상실 |
한국 사회는 무기화된 트라우마를 집단적으로 경험해 온 사회입니다. 민족적 얼로 여겨지는 '한(恨)'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기화된 트라우마의 집단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짓밟혔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 무대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서사, 혹은 '독서실에서 라면만 먹으며 공부했고 군대에서 고생했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개인의 서사는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영화 <크루엘라>는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나르시시즘의 탄생: 실리콘밸리에서 크루엘라까지
<크루엘라>가 특별한 이유는 언더독 스토리의 끝이 빌런 오리진 스토리로 귀결된다는 독특한 구조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복수극이라면 에스텔라가 바로네스를 제압하고 성공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가 바로네스의 성을 차지하고 패션계의 거장이 된 후, 호라스와 제스퍼를 가족이 아닌 하수인으로 대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성공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영화가 2021년에 개봉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시기는 위워크의 창업자 애덤 노이만이나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 같은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이 실제로는 나르시시즘으로 가득 찬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직후였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의 거장들은 '명문대를 그만두고,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며, 양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창고에서 코딩하는' 반항아의 이미지로 포장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소외된 너드(nerd)로, 그러나 세상을 바꿀 특별한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IPO를 하고 대기업의 CEO가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실망했습니다. 반항과 혁신을 외치던 이들이 권력을 얻자 대중과 단절된 엘리트, 심지어는 착취적인 자본가로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섹스 피스톨스나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보여준 펑크 정신이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엘리트주의로 귀결된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너드 레이지(nerd rage) 스토리도 같은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크루엘라>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바로네스는 에스텔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재능이 있어. 하지만 살인 본능이 부족한 것 같아." 이 한 마디는 에스텔라를 변화시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는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여기서 살인이란 물리적 살인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텔라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호라스, 제스퍼와 함께 가난한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차이가 서로를 보완하며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바로네스의 말을 듣고 난 후, 에스텔라는 이들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직원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 시대적 배경 | 대표 인물/사례 | 초기 서사 | 결과 |
|---|---|---|---|
| 1970년대 런던 | 비비안 웨스트우드 | 펑크록 반항 | 엘리트적 차별 |
| 2000년대 실리콘밸리 | 애덤 노이만 | 청바지 입은 혁신가 | 나르시시스트 사기꾼 |
| 영화 속 | 크루엘라 | 순수한 예술가 | 고립된 빌런 |
이러한 변화는 교육 방식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70~80년대까지는 독특한 아이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특히 미국식 교육에서는 "You are not weird, you are special(넌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잘못 해석되면 '나는 특별하다'가 '나는 우월하다'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크루엘라>는 바로 이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화입니다.
수평적 연대: 색감이 필요한 세상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요? 과거처럼 "네가 적응해라"라고 강요하는 것도, "넌 특별해"라며 우월감을 심어주는 것도 모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독특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을까요? 영화는 에스텔라, 호라스, 제스퍼 세 명이 함께 살던 시절에 답이 있다고 제시합니다. 이 세 사람은 각자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텔라는 예술적이고 감성적이었고, 호라스와 제스퍼는 실용적이고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우열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서로 달라. 하지만 우리는 모두 동등해"라는 인식 속에서 각자의 색깔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는 색감이 필요해'라는 메시지입니다. 독특함의 파워를 수직적으로 펼쳐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과, 수평적으로 퍼뜨려 타인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바로네스는 에스텔라에게 전자를 가르쳤습니다. "네 재능으로 꼭대기에 올라가라. 그러기 위해서는 살인 본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호라스와 제스퍼는 에스텔라에게 후자를 보여주었습니다. "네 재능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우리는 네가 필요해. 너도 우리가 필요하잖아."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 같은 '외로운 귀족' 서사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렌스는 영국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별난 왕따였지만, 사막에서 아랍인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하워드 휴스는 결벽증 때문에 고립되었지만, 그 고통을 항공 기술 발전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로렌스는 자신을 '아랍 민족의 메시아'로 착각하며 나르시시즘에 빠졌고, 하워드 휴스는 자본을 이용해 항공사들을 M&A 하며 권력에 집착하게 됩니다. <크루엘라>의 렌즈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트라우마를 건강하게 해석하던 사람이 더 큰 충격을 받으면서 빌런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메시지는 특히 중요합니다. 학원, 대학, 군대, 취직 인터뷰를 거치며 우리는 끊임없이 바로네스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네가 꼭대기에 올라가야 해. 그러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해. 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해."이는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씩은 듣고 자라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크루엘라>는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공은 했지만 처절하게 외롭고, 권력은 얻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존재.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크루엘라가 바로네스의 성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추구해 온 성공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넌 특별해"가 아니라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동등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독특한 재능은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세상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색감입니다. 에스텔라의 디자인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바로네스를 제압하기 위해 만든 파격적인 드레스가 아니라, 호라스와 제스퍼와 함께 웃으며 만들던 소박한 옷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연대가 목표일 때, 재능은 비로소 진정한 빛을 발합니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영화답지 않게 어두운 결말을 보여주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며 "성공이란 무엇인가", "특별함이란 무엇인가"를 토론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무기화된 트라우마로 성공할 수는 있지만, 그 성공이 영혼을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것. 특별함이 우월함으로 변질되는 순간, 우리는 타인과 단절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꼭대기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걷는 수평적 여정에 있다는 것. <크루엘라>가 전하는 이 메시지는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 [출처] 조승연의 탐구생활 - 크루엘라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jNIWDPRG_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