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모가디슈를 보기 전까지 '또 남북 휴머니즘 영화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여름, 종강하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단체 채팅방에서 "우리 진짜 오랜만에 영화나 한 편 때리자"며 의기투합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스크를 쓰고 명부 작성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근처 극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팝콘도 마음대로 못 먹던 그 답답한 공기마저 친구들과 함께라 설레기만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소말리아의 붉은 흙먼지가 스크린을 덮칠 때, 저희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였습니다.

한국 영화 시스템의 완성도를 보여준 프로덕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감탄했던 건 화려한 액션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이렇게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였습니다.
모로코 현지에서 300여 명의 보조 출연자와 함께 거대한 내전 상황을 촬영했다는 점부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특히 예고편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차량 탈출 씬이 기억에 남습니다. 차 두 대에 책과 모래주머니를 둘러 총격을 피하며 탈출하는 장면인데,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장르적으로 신선한 연출이었습니다.
후반부 카체이스 장면들은 특히 놀라웠습니다. 일반적인 액션 영화와 달리 탈출하는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액션이 '리액션'으로만 구성되어야 했습니다. 쏘는 게 아니라 피하고 당하면서도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 영화는 그 역설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문을 열어주는 것의 의미, 그 보편적 휴머니즘
영화의 핵심은 결국 '문을 열어줄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어제까지 적대적이었던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아이들을 앞세워 도움을 요청할 때, 김윤석이 연기한 한신성 대사는 처음엔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공감했던 건 한신성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설정이었습니다. 왼손잡이인데 좌익으로 오해받을까 봐 양손을 다 쓰는, 무사히 귀국하고 싶어 하는 소심한 외교관이죠. 그런 평범한 사람이 북한 아이들의 공포에 질린 눈을 보고 문을 여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남북 휴머니즘을 넘어선다고 느꼈습니다.
깻잎을 집는 디테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측 대사 부인이 깻잎을 집으려다 어려워하자 건너편 북측 대사 부인이 나머지 깻잎을 잡아주는 장면인데, 대사 없이 시각적으로만 보여주는 연출이 훨씬 강렬했습니다.
인슐린 에피소드는 더 의미심장했습니다. 남측이 북한을 도와줄 수 있었던 이유는 남측도 같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은유가 이보다 명확할 수 없었습니다.
무난함이 장점이자 한계인 남북협력 영화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평소 같으면 "어디 가서 술 한잔할까?" 했을 텐데, 그날은 다들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케냐 공항에서 남북이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차갑게 헤어지던 그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이 너무 컸습니다.
마지막 세 컷의 연출은 정말 영화적이었습니다. 남측 대사는 화면 우측을 향해, 북측 대사는 좌측을 향해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점하지 않는 안정된 영화지만, 그만큼 날카롭게 돌출된 개성이 부족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나 베테랑이 가졌던 뾰족한 매력이 모가디슈에는 좀 덜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을 철저히 괄호 쳤다는 점이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나 공작 이후 20년간 남북 협력 영화들이 결국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기대했던 것을 모두 채워주는 한국형 대작입니다. 김윤석과 조인성의 연기, 안정감 있는 스토리텔링, 모로코 현지에서 구현한 압도적인 프로덕션까지. 다만 제가 극장을 나서며 느꼈던 건 감동과 함께 '이제 한국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연출력과 한국 영화계의 시스템적 완성도는 충분히 극장에서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