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 이후 수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관객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풍부한 영상미와 복합적인 서사로 관객을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분석을 토대로, 이 작품을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전적 요소,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은유, 그리고 성장 영화로서의 구조를 중심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탐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전적 요소: 전쟁과 부채 의식의 그림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 경험이 깊숙이 새겨진 작품입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도쿄 대공습을 피해 시골 마을로 피난한 소년 마히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945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 마을로 떠나며, 전쟁이 끝난 지 2년째인 1947년 도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3년간의 시간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경험과 정확히 겹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로 도쿄에서 태어나 대공습을 피해 우스노미야로 피난했으며, 그곳에서 부유했던 할아버지의 저택에서 3~4년을 보냈습니다. 영화 속 마히토의 나이는 11살 정도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미야자키는 더 어렸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11살이라는 나이가 훨씬 더 적합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아버지는 제로센 전투기 부품을 만드는 군수 공장의 공장장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제 가업과 일치합니다. 미야자키 가문은 전쟁 중에도 군수 공장 덕분에 엄청난 부를 누렸습니다.
| 영화 속 설정 | 미야자키 하야오 실제 경험 |
|---|---|
| 1943~1944년 어머니 사망 (대공습) | 어머니 8년간 폐결핵 투병 |
| 1944~1947년 시골 피난 | 우스노미야로 3~4년 피난 |
| 군수 공장 공장장 아버지 | 제로센 부품 공장 가업 |
| 전쟁 중 부유한 생활 | 1500명 직원, 2000평 정원 |
미야자키의 집은 정원만 1500~2000평에 달했으며, 연못과 폭포까지 있었습니다. 직원이 1500명에 달하는 공장을 운영하며 나라는 전쟁으로 엉망이 되어가는데 집안은 풍족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미야자키는 성인이 된 후 깊은 부채 의식과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초반, 아버지가 가져온 트렁크에서 통조림과 설탕 등이 쏟아지며 일곱 할머니가 "전쟁에도 이런 것들은 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바로 이러한 죄책감의 표현입니다.
미야자키의 전기에는 평생 그를 괴롭힌 한 기억이 등장합니다. 1945년 종전 한 달 전, 우스노미야마저 미군의 폭격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트럭에 가족들을 태우고 불타는 도심을 탈출했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제발 우리를 태워달라"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는 무시하고 지나쳤습니다. 어린 미야자키는 그때 "저 여자분을 태워주면 안 될까?"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했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며 탑의 세계로부터 철저히 소외됩니다. 이는 미야자키가 아버지에 대해 품었던 복잡한 감정과 상징적 처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본 근현대사 은유: 탑과 제국주의의 붕괴
영화를 일본 역사에 대한 은유로 파악하는 관점은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두 개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저택을 중심으로 한 현실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탑 안의 환상적인 세계입니다. 특히 탑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상충하는 설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약 80년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부에는 마히토의 고조부가 너무 똑똑해서 탑을 만들었다는 견해가 나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유신 직전에 하늘에서 거대한 돌이 떨어져 원래 있던 연못을 말라버리게 했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약 30년이 지나 숲이 다시 무성해지며 탑을 에워쌌을 때, 큰 할아버지가 그것을 발견하고 건물로 에워쌌으며, 그 건설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견해가 맞다면, 탑이 떨어진 순간은 1850~1860년대 일본의 강제 개항을 의미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이 일본에 통상을 강요하며 쇄국 정책을 유지하던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무너뜨렸고, 이는 천지개벽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인 1890년대,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대만 식민지화, 1910년 한국 강제 병합 등이 이어졌습니다. 큰 할아버지가 탑 주위에 건물을 세우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일본이 벌인 일련의 침략 전쟁을 상징합니다.
| 영화 속 사건 | 역사적 사건 | 시기 |
|---|---|---|
| 하늘에서 탑(돌)이 떨어짐 | 강제 개항과 막부 체제 붕괴 | 1850~1860년대 |
| 30년 후 큰 할아버지 탑 발견 | 메이지 유신 후 제국주의 시작 | 1890년대 |
| 건설 과정에서 많은 사람 사망 | 청일전쟁, 러일전쟁, 식민지 침략 | 1894~1910년대 |
| 앵무새 대왕의 집회 | 파시즘의 등장과 군국주의 | 1930~1945년 |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앵무새 군단과 앵무새 대왕은 더욱 직접적인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앵무새 대왕이 여는 집회는 나치 집회를 연상시키며, 깃발에 쓰인 글자는 '비바 두체'를 변형한 것입니다. '두체'는 이탈리아어로 '두목'이라는 뜻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앵무새 대왕은 무솔리니, 히틀러,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2차 세계대전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은유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영화는 이 탑이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있다고 설정함으로써,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전 세계적 현상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어머니가 1937년에 아들에게 메모를 남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937년은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해입니다. 그로부터 3~4년 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일본은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어머니가 그 직전에 메모를 남긴 것은 최악으로 치닫기 직전의 일본을 상징합니다. 반면 새어머니 나츠코는 출병하는 장교에게 경의를 표하며, 탑 안에서 아이를 낳으려 합니다. 같은 얼굴을 가진 두 자매는 일본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즉 비판적 성찰과 맹목적 애국주의를 대변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머니의 시각에 자신의 입장을 투영하며,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잊혀 가고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현대에도 알리고자 많은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 영화의 구조: 죽음에서 삶으로의 복귀
세 번째 관점은 이 영화를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로 읽는 것입니다. 자전적 요소나 역사적 은유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은 마히토라는 소년이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고 삶으로 복귀하는 과정입니다. 영화는 마히토가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도쿄 대공습으로 세상은 불바다가 되었고, 멀리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 불타고 있습니다.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가려다 잠옷 차림임을 깨닫고 교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순간의 지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무서움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원초적 죄책감은 마히토를 평생 괴롭힙니다. '나는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 엄마가 불구덩이에서 죽어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새어머니 나츠코에 대한 양가적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나츠코는 죽은 어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자리를 빼앗은 침입자이기도 합니다. 전학 첫날 친구에게 뺨을 맞은 마히토는 학교도, 이 새로운 세계도 싫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로 자신의 머리를 칩니다.
이 자해 행위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한 핑계이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죽음을 향한 욕망의 표현입니다. 마히토는 엄마를 따라 죽고 싶었습니다. 마음 붙일 곳 없는 이 세상에서, 그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탑의 세계로 들어간 마히토가 최초로 한 행동은 '죽음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문에는 "나를 배우는 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려는 소년을 젊은 키리코가 구해주며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됩니다.
| 마히토의 여정 | 상징적 의미 |
|---|---|
| 어머니의 죽음 목격 | 원초적 죄책감과 트라우마 |
| 자해 행위 (돌로 머리 때림) | 죽음을 향한 욕망과 세계에 대한 거부 |
| 죽음의 문 통과 | 죽음의 세계로의 진입 |
| 탑 안에서의 모험 | 내면의 갈등과 치유 과정 |
| 큰 할아버지의 제안 거절 | 고립된 이상이 아닌 현실 선택 |
| 현실 세계로 귀환 | 삶에 대한 의지와 성장 |
마히토는 탑 안에서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합니다. 첫째, 그리운 엄마를 만나는 것. 둘째, 새어머니 나츠코를 구출하는 것. 셋째, 나츠코가 임신한 아기를 탑 안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낳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큰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거대한 일의 계승자가 되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이를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 즉 자해를 통해 학교를 거부했던 일,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택했던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입니다.
마히토는 세상을 경영하는 거대한 이상보다, 자신이 했던 일에 책임을 지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현실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는 히미, 왜가리 남자, 키리코 같은 친구들을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이 선택은 고립된 완벽한 세계보다 불완전하지만 관계가 있는 현실을 택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향하던 소년이 삶의 의지를 되찾고, 친구를 거부하던 아이가 우정을 위해 현실로 복귀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마히토는 도쿄로 돌아가며, 아마도 학교로도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입니다.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고, 불완전한 세상을 받아들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 다뤄온 테마가 여기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와 메이,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 모두 죽음과 맞닥뜨린 후 삶으로 복귀하는 여정을 겪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히토 역시 같은 길을 걷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미야자키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일본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욱 깊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한 창작자의 평생에 걸친 자기 고백이자 역사적 증언이며, 동시에 모든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출처]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이 읽기
https://www.youtube.com/watch?v=O_b6dipTBK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