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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파도를 넘는 숭고한 계승: 와칸다가 증명한 '슬픔의 서사'와 캐릭터의 힘(서사구조, 캐릭터활용, PC논쟁)

by woozoo100 2026. 2. 9.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후속작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채드윅 보스만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제작된 작품입니다. 영화는 티찰라의 부재를 정면으로 다루며 슈리의 성장과 새로운 위협 탈로칸과의 충돌을 그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동적인 오프닝과 달리 서사 구조의 허점, 캐릭터 활용의 실패,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PC)을 앞세운 평가라는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영화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 대표 포스터

서사구조의 치명적 허점과 작위적 전개

영화의 시작은 장엄합니다. 티찰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슈리의 절규와 마블 로고의 엄숙한 연출은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오프닝부터 티찰라의 죽음을 실제 배우에 대한 헌사로 채우며 관객과 배우, 캐릭터가 동시에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후계자 선출이라는 전개에 강력한 감정적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장면 하나로 보면 괜찮지만 연결해서 생각하면 숭숭 뚫린 구멍이 훤히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입니다. 비브라늄을 둘러싼 갈등은 와칸다와 탈로칸의 충돌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리리 윌리엄스라는 캐릭터가 개입합니다. 멀쩡히 학교 다니던 19세 학생을 찾아가서 위험에 빠뜨리고 납치당하게 만든 주체가 바로 와칸다이며, 이를 명령한 사람이 라몬다 여왕입니다. 라몬다 여왕의 죽음 장면만 보면 숭고해 보입니다. 네이머의 공격 속에서 자신의 목숨보다 리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익사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상황 자체가 억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슈리가 탈로칸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탈로칸과의 외교적 제스처도 취하지 않은 채 나키아를 보내 일을 망친 것도 라몬다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나키아가 탈로칸 여성을 살해하고 슈리를 구출한 후 전쟁이 발발하는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두 문명, 서로 다른 두 국가가 사실상 싸울 이유가 없는데 억지로 싸움을 붙이는 작위적 전개가 계속됩니다. 지상 세계로부터 자원을 지키려는 와칸다와 해저 왕국 탈로칸의 충돌은, 제국주의에 희생되었던 두 문명이 서로를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정작 그 충돌의 과정이 너무나 부자연스럽습니다.

전개 단계 서사적 문제점 개연성 평가
리리 개입 와칸다의 무책임한 민간인 연루 매우 낮음
나키아 파견 외교적 절차 무시, 탈로칸 여성 살해 낮음
전쟁 발발 충분한 갈등 누적 없이 급격한 전개 매우 낮음

영화의 마지막 전투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슈리와 네이머가 함께 날아오르며 "싸움을 멈춰라"라고 외치자 양측이 모두 전투를 중단하는 장면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서로 어머니 이름을 물어보고 화해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애도와 정치적 서사에 긴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전통적인 히어로 영화의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러닝타임이 다소 길고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빈틈이 너무나도 많은 전개로 인해 집중도도 떨어지고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 남은 것이라곤 의문 밖에 없습니다.

캐릭터 활용의 참담한 실패: 리리 윌리엄스

리리 윌리엄스는 마블 역사상 가장 멍청한 캐릭터 활용 사례입니다. 아메리카 차베즈조차 양반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리리는 이 영화에서 아무런 서사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았고, 와칸다와 함께 움직이면서부터는 그냥 이야기에서 겉돌면서 계속 끌려만 다닙니다. 시빌 워에서 새롭게 등장한 티찰라와 피터 파커를 생각해 보십시오. 티찰라는 시작부터 아버지가 사망하고 복수를 천명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히 어필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왕자, 복수에 눈이 먼 캐릭터, 그러나 마지막에는 복수의 대상을 용서함으로써 고결함을 보여주는 인물로 제시되었습니다. 피터 파커는 토니와 만나는 짧은 순간에도 자신의 고민과 고뇌를 드러내며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전달했습니다. 리리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리리가 사실상 사이코패스 살인광으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리리의 원래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이언하트 슈트를 만들어 비행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는 정도의 천재적인 지능을 지닌 19세 공대생이었습니다. 평범한 학생이 리리의 정체입니다. 그런데 이 평생 평범하게 살아온 19살 소녀가 전쟁터에 나가자마자 신나게 탈로칸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아이언하트 슈트를 입고 날면서 손에서 리펄서 빔 같은 것을 쏘아 탈로칸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충격적입니다. 네이머에게도 한 방 먹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가합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고작 19살 소녀가, 그것도 평생 평범하게 살아온 학생이 전쟁터에 나가자마자 신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설정 자체가 도덕과 윤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대고 비비탄총을 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리리는 지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신나게 쏘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곳에서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에서 토니는 자기가 판 무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충격을 받아 군수 산업을 포기할 정도였는데, 그 후계자라는 리리는 사람을 못 죽여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더욱 웃긴 것은 슈리에게는 살인을 안 시킨다는 점입니다. 슈리는 음바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리리 같은 사이코패스가 활약할 무대도 마련해 줬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네이머를 죽이려니 양심에 걸렸는지 네이머의 목숨을 살려줍니다. 조연인 리리는 사람을 죽여도 되는데 슈리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가 적용된 것입니다. 결국 리리 윌리엄스는 디즈니 드라마를 팔기 위한 끼워 팔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PC 논쟁과 영화 평가의 본질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가치를 논할 때 흑인 여성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영화는 백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흑인 여성이 주도적이며, 미국의 역할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보다 넓은 가치를 말하고 있다는 식의 평가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해서 무슨 레퍼런스라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흑인이 중심이 되는 영화,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동성애자나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모두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흑인 여성이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로 왜 이 영화의 가치가 자동으로 높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영화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포스터가 아닙니다.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면 영화의 내용이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것입니까?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영화를 무슨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 정도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영화는 있을 수 있고, 작가의 메시지가 중요한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필수적인 메시지와 움직임이 모든 영화에 동일하게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성, 흑인, 동성애자가 모두 나오면 훌륭하다는 게으른 평자들의 표창장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입니다. 우리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히어로 영화를 평가할 때는 예술 영화를 평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은 격려할 만한 일이고 칭찬받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영화 자체의 평가나 가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요소 PC적 평가 실제 완성도
흑인 여성 주인공 혁명적이고 의미 있음 캐릭터 활용 실패
다양성 표현 포용적이고 진보적 전시적이고 작위적
사회적 메시지 날카롭고 용기 있음 서사 구조에 방해됨

티찰라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PC를 완성하기 위해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미혼모 이야기도 넣고, 뜬금없이 오코예가 동성애자라는 식의 표현을 합니다. 마치 전시하듯 PC를 끼워 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래된 낡은 평론계가,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런 부분에 눈치를 보면서 이른바 평가 요소를 정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흑인이 주인공인가, 여성이 주인공인가, 장애인을 등장시켰는가, 그들에게 고른 활약을 주었는가, 주요 인물 중 하나가 반드시 동성애자인가 같은 체크리스트를 충족시켜야만 훈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슈리의 블랙 팬서는 약해 보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슈리의 몸은 너무나 왜소하고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습니다. 킬몽거나 티찰라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것을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곰이 강해 보이고 덩치 큰 사자가 강해 보이는 것도 편견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슈리의 블랙 팬서가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출을 해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오빠가 가진 슈트와는 전혀 다른 기능이나 슈리만 할 수 있는 고유의 시그니처 무브 정도는 남겨줘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일절 없었습니다. 반면 오코예는 어떻습니까? 오코예는 강인해 보입니다. 여성의 신체로도 충분히 강인한 인상을 주며, 몸도 다부지고 근육도 보이며 신체도 건장합니다. 오코예에게 블랙 팬서 슈트를 입혔으면 슈리가 입은 것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는 블랙 팬서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성은 약하지 않습니다. 오코예와 주변 전사들은 모두 강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슈리의 왜소함이지 여성의 왜소함이 아닙니다. 영화에 대한 비평은 영화의 내적인 요소들과 표현,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뤄져야 합니다. 영화가 지닌 프로파간다가 영화의 가치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영화의 단점을 정치적 메시지가 덮어버리는 기현상을 멈춰야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상업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묘사가 허전했던 것도, PC를 앞세운 것도 말입니다. 자본주의 뒤에서 PC를 내세우고 이쪽을 챙기는 디즈니의 기만에 신나서 훈장이나 벌어주는 일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영화 산업의 선두주자가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헌사로는 의미가 있지만, 히어로 영화로서는 형편없었습니다. 서사 구조는 허점투성이고, 캐릭터 활용은 참담하며, 액션은 무력합니다. 2시간 40분이 아까울 정도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면죄부가 영화의 본질적 완성도를 가리는 현상을 정확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차라리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나았고, 최근 나온 마블 영화 중 최악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적절합니다.

 

 

포에버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mlXPXhF6F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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