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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을 넘지 못한 소파, 스스로 집이 된 여자: <만약에 우리>가 그린 이별의 인문학(가난과 이별, 소파 상징, 성장의 의미)

by woozoo100 2026. 2. 11.

2024년 비 내린 호치민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탄 정원과 은호가 재회하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끝난 사랑을 되돌아보며 그 시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여정을 그립니다. 태풍 캐슬린으로 인해 운항이 취소되고 같은 호텔 방을 쓰게 된 두 사람은, 흑백으로 물든 현재와 색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오가며 자신들의 사랑이 남긴 의미를 돌아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별의 슬픔을 넘어, 가난이라는 현실과 꿈, 그리고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영화 만약에 우리 대표 포스터

가난과 이별: 현실이 사랑을 갉아먹는 과정

2008년 여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정원과 은호는 산사태로 막힌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시작합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정원에게 은호의 아버지가 건네는 '밥 먹고 가라'는 말과 낙지탕탕이는 평생 찾아 헤맨 집 그 자체였습니다. 정원이 꿈꿨던 것은 거창한 건축물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조건 없이 밥을 해주며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 즉 가족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은호의 식당 낡은 식탁과 아버지가 싸준 반찬통, 노을 지는 바다에서 함께 소원을 비는 순간 속에서 정원은 비로소 뿌리를 내릴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배의 어머니로부터 "부모님이 안 계시고 고시원에 살고 있다니 좋은 가정환경은 중요하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순간, 정원은 자신에게 허락된 행복의 정량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시원의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손바닥만한 햇빛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밝고 따스한 기분 좋은 햇살이지만, 정원에게는 세상이 자신에게 허락한 행복의 한계처럼 느껴져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은호의 자취방에서 커튼을 걷어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정원은 다시 꿈을 꿉니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남들이 버린 소파를 집으로 가져와 그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미래를 꿈꾸며 평범한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은호의 아버지가 당뇨에 백내장까지 찾아오며 상황은 급변합니다. 은호는 게임 개발을 멈추고 대출을 받으려 회사에 들어가고, 정원은 모델하우스 알바를 하며 뒤꿈치가 까져 피가 날 정도로 은호를 돕습니다. 정원에게 그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집 그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멍청하게 만듭니다. 서로를 향한 희생은 점점 고마움에서 미안함으로, 다시 부채감으로 변해갔고, 결국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지독한 피로가 되었습니다. 업무로 인한 피로 때문에 은호는 게임 개발은커녕 컴퓨터 앞에서 잠들기 일쑤였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빛이 잘 들던 방을 떠나 눅눅한 반지하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정원이 꿈을 꾸며 만들었던 모형집을 쓰레기봉투 위에 놓아둔 채로 말입니다.

시기 공간적 상징 감정의 변화
연애 초기 햇빛 잘 드는 자취방 설렘과 행복
현실의 벽 눅눅한 반지하 미안함과 부채감
이별 후 텅 빈 방 피로와 고통

소파 상징: 문턱을 넘지 못한 안락함

정원과 은호의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소파가 반지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순간입니다. 두 사람의 행복을 상징하던 소파는 반지하 방의 문을 절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마치 이 차가운 현실에는 너희가 꿈꾸던 안락함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소파는 좁은 문 앞에서 멈춰 섭니다. 정원은 그 소파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소파로 대변되는 은호와의 행복을 지키고 싶어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손을 다쳐 피를 흘리게 됩니다. 은호가 정원에게 짜증을 낸 것은 정원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한 자신의 무능함, 그녀의 꿈을 쓰레기통에 처박게 만든 자신의 가난이 은호를 점점 갉아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은호는 정원의 상처를 보며 미안함에 가슴이 찢어졌지만 오히려 화를 내고 정원을 밀어냅니다. 이는 무능함에 대한 자책이었고, 더 이상 정원을 자신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심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소파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길가에 내버려진 날,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있던 집도 함께 길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은호는 자신의 꿈을 무시당하고도 현실의 벽에 막혀 자신을 때린 상사에게 비굴하게 사과하며, 한때 같은 꿈을 꿨던 친구들은 가족의 도움으로 고생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게임의 주인공이 고생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평탄한 스토리로 도망쳤던 은호는 힘든 꿈을 포기하고 도망쳐 결국 게임 세계에 갇혀버립니다. 정원에게 선풍기를 쐬어주지도 않으면서 정원의 햇빛을 빼앗아 버리면서까지 말입니다. 정원은 컵라면에 물을 받고 조용히 은호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어둑한 집안, 힘없는 뒷모습, 무심히 울리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를 보며 정원은 생각합니다. 비록 조촐한 컵라면이지만 식사 한 끼 함께하지 않는 이곳은 자신이 바라왔던 가족도 집도 아니게 돼버렸고, 내가 떠나지 않는다면 이 고통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도망치는 게 아닌 떠나며 놓아줘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정원이 짐을 챙겨 나가고 문이 닫히자 은호는 뒤를 돌아봅니다. 정원을 밀어냈던 건 자기 자신이었지만 정원이 정말로 떠나버리자 은호가 마주한 건 자유가 아닌 텅 빈 집이었습니다.

성장의 의미: 이별 후에 발견한 진짜 집

은호는 황급히 달려 나가 정원을 찾아 지하철역에 도착합니다. 곧 닫힐 문을 사이에 두고 은호는 비에 젖은 정원에게 우산을 건네지도, 지하철에 함께 타지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한 발짝 물러섭니다. 정원을 사랑하지만 자신과 함께라면 함께 망가질 걸 알고 있고, 지금 붙잡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은호 자신도 정원을 떠나 놓아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제야 은호는 평탄한 스토리를 포기하고 주인공의 시련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꿈이었던, 자신의 사랑이 응원해 줬던 게임 개발을 다시 시작하고, 정원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결국 둘은 각자 현실의 꿈을 이뤄내고 시간이 흘러 현재까지 오게 됩니다. 호텔 방에서 은호는 묻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반지하방으로 이사 안 갔으면 우리 안 헤어졌을까? 만약에 네가 나 끝까지 기다려줬으면, 만약에 내가 그날 지하철 탔으면 타서 잡았으면." 하지만 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지나갔고 그 시절에 우리는 이미 없다는 것, 돌이킬 수 없다는 것, 마지막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원은 오히려 지독하게 가슴 아픈 상실 덕분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자신의 집을 짓는 법을 배웠고, 은호는 도망치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걸 잘 아는 둘이었기에 눈물을 쏟아내고 그저 후련한 듯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그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며 마지막 감사 인사를 건넵니다. "다 해주고 싶었는데 모두 다 받았어.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은호는 정원의 명함을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원에게 남긴 편지를 보내줍니다. 그 편지에는 "너희 둘이 헤어졌지만 매년 이맘때면 정원이가 생각나고 이번에도 네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잔뜩 해버렸다. 인연이라는 게 마지막까지 잘되면 좋겠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는 않다. 사람의 삶도 마음도 변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도 괜찮다. 나한테도 은호한테도 너는 참 귀한 사람이었어.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정원이는 잘 해낼 거야. 항상 밥은 꼭 잘 챙겨 먹고 아저씨 반찬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늘 건강하고 행복하렴"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정원이 집이라 생각한 곳을 떠났지만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며, 그랬더라도 여긴 언제든지 네가 돌아와도 되는,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는 마음을 전달합니다. 이후 정원은 은호가 만든 게임의 엔딩을 봅니다. 정원과 은호가 처음 만났던 저녁 바다에 있던 모습을 본 제인에게 에릭이 찾아오고 함께 앉아 색을 날려 보내자 놀랍게도 바다가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집니다. 은호는 아버지의 편지와 더불어 정원이 응원해 줬던 꿈의 형태인 게임의 엔딩을 통해 '내 과거는 너로 인해 아름답게 빛났었다'는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제야 자신에게도 자신이 믿었던 집이 있었음을 확인한 정원의 세상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별을 통해 비로소 서로의 인생에 영원한 '집'으로 남는 법을 배운 정원과 은호의 이야기는, 흑백의 현재와 유채색의 과거, 손바닥만한 햇빛과 눅눅한 반지하의 대비를 통해 영화의 미장센을 효과적으로 강조합니다. 집을 떠나 이사를 한다고 해서 과거에 내가 살았던 집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듯, 우리 또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과거를 후회하고 그 슬픔을 양분 삼아 성장하게 됩니다. 만약에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만약에 네가 나를 잡아줬다면 같은 수많은 가정이 우리를 괴롭힐 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아픈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남겨두고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 [출처] 만약에 우리 / 바로 만약에 우리: https://www.youtube.com/watch?v=fazPhnNL4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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