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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뜨거운 랠리의 언어: <챌린저스>가 정의한 '다정한' 파괴(욕망의 구조, 테니스와 성애, 타시의 진짜 목적)

by woozoo100 2026. 2. 14.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는 테니스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과 육체,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다층적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3년이라는 시간차를 넘나들며 세 남녀의 복잡한 관계를 그려내는데, 표면적으로는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욕망의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영화 챌린저스 대표 포스터

욕망의 구조: 테니스 코트와 침대의 이중성

챌린저스는 독특한 영화적 언어를 구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테니스 경기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성애 장면의 은유이며, 반대로 베드신은 테니스 경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18살 때 세 사람이 처음 만난 날, 호텔 방에서 벌어진 키스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침대 가운데 앉은 타시가 화면 왼쪽의 아트와 오른쪽의 패트릭에게 교대로 키스를 하다가, 자신은 뒤로 빠지면서 두 남자만 남겨두는 이 장면은 사실상 테니스 코트의 구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타시가 앉아 있는 관중석을 중심으로 네트 양쪽에 아트와 패트릭이 위치하며, 그녀가 빠진 후 두 남자 사이에서 격렬하게 오가는 공은 바로 그날 밤 중단된 키스의 연장선입니다. 패트릭이 타시에게 "라켓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외설적 농담이 아닙니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타포입니다. 라켓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 경기가 곧 성애 장면이며, 성애 장면이 곧 스포츠 경기라는 영화의 구조적 특징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 타시와 남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성애 장면은 대부분 중단되거나 암시로만 처리됩니다. 타시와 패트릭의 관계는 항상 관계 직전에 중단되고, 타시와 아트의 장면은 마치 엄마가 아들을 달래는 듯한 모성적 장면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두 남자 사이의 스킨십은 매우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복식 우승 후 바닥을 뒹구는 포옹, 우승컵을 사이에 두고 키스하는 듯한 구도, 주차장에서의 키스 장면, 그리고 함께 먹는 음식의 남성 성기 상징 등이 그것입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굉장한 양의 은유가 포함되어 있어서 여러 번 볼수록 해석이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시간대 장면 유형 실제 의미
18살 (과거) 침대에서의 삼각 키스 미완성된 테니스 경기의 예고
18살 (과거) 단식 결승 (타시 중심) 욕망의 전쟁, 진정한 경기 아님
31살 (현재) 유로셀 챌린저 결승 완성된 욕망의 해소와 성취

12살 때 두 소년이 각자의 침대에서 캣 짐머만을 상상하며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방 양쪽 구석의 두 침대는 코트 양쪽이며, 캣 짐머만은 훗날 부상으로 은퇴하는 타시의 원형입니다. 12살 때 시작된 이 구도는 31살의 결승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한 여자를 상상하며 각자의 욕망에 몰두하던 소년들은, 성인이 되어 타시를 사이에 두고 마침내 서로를 향한 진짜 욕망을 코트 위에서 분출합니다.

테니스와 성애: 껌을 뱉는 손의 의미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반복되는 행위들을 통해 진짜 관계의 원형을 드러냅니다. 아트가 경기 전 껌을 뱉을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면 그 관계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아트는 아내 타시의 손에 껌을 뱉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의존적이고 모성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 장면을 보면, 13년 전 아트가 껌을 뱉을 때 손을 내민 사람은 패트릭이었습니다. 타시와 아트 사이의 특별한 행동은 사실 패트릭과 아트 사이에서 먼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원본은 패트릭과 아트의 관계였고, 타시와의 관계는 그것의 재현이었습니다. 매치 포인트 직전까지의 경기는 타시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패트릭은 전날 밤 타시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제스처(라켓 중앙에 공을 대는 동작)를 아트에게 보여주며 도발합니다. 아트는 충격을 받아 두 포인트를 연속으로 내줍니다. 그러나 곧 아트도 같은 제스처로 응수합니다. 이는 "그녀는 결국 내 아내"라는 선언이며, 동시에 피장파장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 순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타시가 제거됩니다. 더 이상 그녀를 두고 다투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제야 두 남자는 순수하게 서로만을 향해 경기할 수 있게 됩니다. 매치 포인트 이후의 격렬한 랠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두 선수의 몸통만을 클로즈업하며 촬영되는데, 이는 명백히 베드신의 문법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여름, 햇살, 육체에 대한 탐닉으로 유명합니다. 챌린저스 역시 육체를 가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의 황홀함을 극대화합니다.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가 공의 향배를 따라간다면, 이 영화의 카메라는 공이 아닌 인간의 육체를 응시합니다. 테니스공보다 그것을 치는 인간의 근육, 땀, 움직임에 집중합니다. 이는 이 영화가 스포츠가 아닌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타시의 진짜 목적: 끝내주는 테니스를 위한 13년

표면적으로 챌린저스는 타시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진짜 주인공은 타시이며, 그녀의 목적은 처음부터 명확했습니다. "나는 그냥 끝내주는 테니스가 보고 싶었을 뿐이야." 18살 때 타시는 안나 밀러라이트와의 경기에서 완벽한 테니스를 경험합니다. 패트릭이 그 경기를 "테니스가 아닌 다른 차원"이라고 표현하자, 타시는 정확히 반박합니다. "넌 테니스를 몰라. 테니스는 개인 기량이 아니라 관계야." 두 플레이어와 관중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관계, 그것이 진짜 테니스라는 것입니다. 타시가 18살에 경험한 그 경지를, 테니스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두 남자에게 깨우치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플롯입니다. 그녀는 13년간 두 사람을 코칭합니다. 아트에게는 직접적인 코치로, 패트릭에게는 "저에게 져달라"는 요청과 그에 따른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코칭합니다. 영화 속 광고판에서 "GAME CHANGER"가 "GAME CHANGERS"(복수)로 바뀌는 장면은 우연이 아닙니다. 게임을 바꾼 사람은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며, 그 중심에는 타시가 있습니다. 마지막 결승전은 타시가 양쪽 모두를 코칭한 결과입니다. 매치 포인트 이후 두 남자는 비로소 순수한 테니스, 진짜 관계로서의 테니스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타시는 일어서서 "커먼!"을 외치며 포효합니다. 이는 13년 전 안나 밀러라이트와의 경기에서 우승 순간 그녀가 보여준 포효의 재현입니다. 영화는 누가 이겼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승자는 관중석의 타시입니다. 그녀는 13년 전 자신이 경험했던 "끝내주는 테니스"를 마침내 다시 목격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두 선수를 통해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18살 때 두 남자가 타시의 경기를 관람했다면, 31살에는 타시가 두 남자의 경기를 관람합니다. 관계는 역전되었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동일합니다. 완벽한 테니스, 완벽한 관계의 성취입니다.

인물 관심사 최종 성취
아트 타시(표면) / 패트릭(심층) 패트릭과의 진짜 경기
패트릭 타시(표면) / 아트(심층) 아트와의 진짜 경기
타시 끝내주는 테니스 완벽한 관계로서의 경기 목격

챌린저스는 말로는 결코 소통하지 못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거짓말과 질투, 오해로 얽힌 그들이 유일하게 정직해질 수 있는 순간은 코트 위에서 뿐입니다. 테니스공이라는 노란 매개체를 통해서만 그들은 진심을 주고받습니다. 마지막 랠리는 승패의 순간이 아니라, 세 사람이 비로소 하나로 연결되는 다정함의 역설적 완성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삶이라는 코트 위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여서라도 진심을 끌어내려는 뜨거운 태도라는 진리입니다.

 

 

 

--- [출처] BTV 이동진의 파이키 - 챌린저스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HRCAPi1a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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