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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다는 약속, 12년 만에 닫힌 문(재난의 기억, 문의 의미, 치유의 메시지)

by woozoo100 2026. 2. 7.

2022년 11월 11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 번째 재난 시리즈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본에서 개봉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가상의 재난이 아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첫 시도였습니다. 감독은 11년이라는 시간이 국토를 부흥시키기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하기에도 짧지만 그 모든 것을 잊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잊혀 가는 장소와 기억에 대한 애도의 필요성을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담고 있는 재난의 기억, 문이라는 상징이 가진 깊은 의미, 그리고 생존자들을 향한 치유의 메시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대표 포스터

재난의 기억을 다시 여는 용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잊혀 가는 재난의 기억을 다시 꺼내기 위함이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최대 진도 7, 최대 규모 9의 강진으로 1만 9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일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습니다. 이 지진은 수많은 여진과 쓰나미를 불러왔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봉일 기준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지진을 기억하는 일본 인구는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으며, 감독의 12살 딸조차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을 잊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재해나 인구 소멸로 사람들이 떠나며 폐허가 되는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이런 장소들을 애도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고, 잊혀 가는 장소를 지진이라는 재난의 발원지로 묘사함으로써 우리에게 발생했던 재난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잊는다면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의 개봉일을 2022년 11월 11일로 정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11년이 지난 후에 개봉했다는 의미와 지진의 발생일이 11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의 개봉 날짜를 3월로 통일한 것도 지진 발생 월이 3월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독은 영화의 모든 요소에 재난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들을 세밀하게 배치했습니다.

영화 속 방문 지역 실제 재난 사건 발생 연도
미야자키현 구마모토 지진 2016년
에이메현 폭우 산사태 2020년
고베 한신·아와지 대지진 1995년
도쿄 관동 대지진 1923년
이와테현 동일본 대지진 2011년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역들은 현실판 재난이 있었던 곳이나 인근으로 정해졌습니다. 스즈메의 여행 경로는 단순한 로드무비가 아니라 일본 열도를 따라 발생했던 재난의 역사를 순례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일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닫는 행위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일상을 빼앗긴 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숭고한 장례식과도 같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이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문의 의미와 상징성의 깊이

영화의 제목이 '스즈메의 문단속'인 만큼 '문'이 가지는 의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입니다. 문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완전히 분리해 버릴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장소에 출입이 가능한 입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의 존재는 장소의 존재를 증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에 문 하나만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누군가의 삶이 깃들어 있는 장소가 있었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문을 사용하는 장소는 살아있는 장소, 문을 사용하지 않는 장소는 죽은 장소라고 정의했습니다. 영화 중 문을 닫을 때에 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라'는 말만 반복되는 것은 스즈메가 찾았던 문이 있던 장소들이 떠나간 사람들은 있지만 돌아온 사람들은 없는 '죽은 장소'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이러한 문은 어떠한 계기로 열려버림으로써 재앙이 현실로 나올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문을 다시 잠그기 위해 문에 대고 기도하고 애도를 표합니다. 이 문을 드나들며 이곳에 있었던 모든 삶과 그들의 기억들, 그리고 이 장소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진심을 담은 애도를 마치고 나야만 문을 잠글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잊혀 가고 있는 장소에 대한 기억과 애도를 통해서만 현실은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 영화가 문을 여는 영화가 아니라 문을 닫는 영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의 숨은 뜻은 제대로 닫기 위해 '열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문을 잠글 때 '돌려드립니다'라고 하는 대사의 의미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원래 자연 위에 인간이 터전을 마련했었는데 이제 이곳이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는 장소가 되었으니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이 가진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며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감독의 의도를 깊이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주인공 스즈메의 풀네임은 이와토 스즈메입니다. 일본어로 쓰면 바위로 된 문, 방울, 싹이라고 해석되는데, 감독은 이름 자체는 스즈메이지만 뜻은 스즈메가 아니라 진정시키다는 뜻의 시즈메에서 따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름의 뜻을 직역하면 '바위로 된 문을 진정시키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소타의 이름은 무나카타 소타인데, 이는 후쿠오카 무나카타시 무나카타 대사에서 모시고 있는 일본의 대륙 및 해상 교통의 안전을 수호했던 세 여신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치유의 메시지와 생존자를 향한 시선

동일본 대지진의 생존자들은 엄청난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정상적인 생활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수많은 고통보다 더욱 힘든 것은 재난 상황의 이야기를 터부시 하는 일본의 문화 때문에 생존자들이 받는 편견과 차별이며 일본 사회의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치유와 극복의 과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었고, 생존자들은 자신이 '살아서 다행이야'라는 생각보다 살아있는 것이 죄스러운 상황을 계속 마주하게 됩니다.

스즈메 또한 그런 생존자 중의 한 명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려는 장면들이 많이 노출됩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 영화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의 이야기를 다시 꺼냄으로써 생존자들에게는 삶에 대한 가치와 살아가야 할 희망의 메시지를 건넸고, 영화를 통해 편견과 차별 없이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스즈메와 성장한 스즈메가 만나는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다리가 하나 없는 '의자'로 변한 소타나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위로하는 어린 스즈메와의 만남은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들이 결국 스스로를 긍정해야만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감독의 깊은 통찰을 보여줍니다. 왜 어린 스즈메를 위로한 사람은 결국 누구도 아닌 스즈메 본인이었을까요? 이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지닌 채 살아가는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상처가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 깊어서 그 어떤 타인의 위로의 말이나 금전적인 것으로도 쉽게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타인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즈메가 만났던 모든 주변인들은 조력자 역할 정도에 머물고 있었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자신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누구도 아닌 스즈메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즈메는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짧게 지나간 인연들에 개연성과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혹평을 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들은 스즈메의 여행에 잠깐의 숙식과 이동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서 등장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감독은 이들과 스즈메의 만남을 통해 재난의 상황을 터부시 하고 생존자들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게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그들에게는 스즈메의 가출은 마치 재난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며, 스즈메가 처한 상황이나 이유가 궁금했을 것이고 안타깝고 또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여 불편하게 하거나 가출을 신고하는 등 억지로 돌려보내려는 행동은 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스즈메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정해 줌으로써 스즈메가 그곳에 있을 이유와 명분을 제공해 줍니다. 이 때문에 스즈메는 목욕탕을 청소하고 쌍둥이들을 돌보고 주방에서 일까지 하면서 고생을 하는 듯하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편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손님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닌 그들의 삶의 일부로 대해 줬으니까요.

등장인물 이름의 의미 상징성
이와토 스즈메 바위로 된 문을 진정시키다 재난을 애도하고 문을 닫는 주체
무나카타 소타 교통 안전의 수호 여신 여행의 안전한 동행자
타마키 마음의 순환 감정 표출과 갈등 해소
다이진/사다이진 우측/좌측 대신 신의 대리인, 요석의 화신

이처럼 일본 사회에 필요한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과 기피, 무관심이나 동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여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 상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어루만져 주되 과하게 꺼내거나 억지로 치유하지 않는 섬세함, 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살아갈 가치가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재난의 상황과 가출의 비유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초반에 스즈메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며 모든 질문들을 일축하지만, 후에는 그들과의 이별에서 '안녕히 계세요'가 아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들의 삶은 스즈메에게 또 다른 삶의 터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재난의 기억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와 생존자들을 향한 진정한 공감의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만 140억 엔의 수익을 올리며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서 연속 세 번째로 1,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 장르가 재난의 상처를 얼마나 잘 보듬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모범적인 선례를 보여줬습니다. 문을 여는 것은 기억을 열어 제대로 닫기 위함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잊혀 가는 이들을 애도하고 현재와 미래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스즈메의 여정은 곧 우리 모두가 가야 할 치유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ERhE9DHYO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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