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설국열차를 처음 봤을 때 단순히 '앞으로 가는 혁명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꼬리칸 사람들이 머리칸을 향해 돌진하고, 윌포드를 쓰러뜨리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요.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전혀 다른 곳에 있더군요. 커티스의 혁명은 사실 혁명이 아니었고, 진짜 혁명은 남궁민수가 바라보던 '옆'에 있었습니다.

완벽하다던 엔진, 아이들을 갈아 넣어야 돌아가다니
윌포드의 엔진은 신성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무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발전하는 완전무결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제가 극장에서 엔진 내부 장면을 봤을 때 느낀 건 경악이 아니라 씁쓸한 웃음이었습니다. 저 '완벽한' 엔진이 고작 부품 부족 때문에 꼬리칸 아이들을 집어넣어야 겨우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봉준호 감독이 과학 기술 만능주의를 향해 던지는 냉소입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절대 완전할 수 없고,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숨어 있습니다. 윌포드는 자신을 신이라 여기지만, 실상 그의 낙원은 가장 약한 존재들을 착취해야만 유지되는 이쑤시개 위의 균형일 뿐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현대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 뒤에도 누군가의 저임금 노동, 누군가의 건강 희생이 숨어 있다. 제가 쓰는 스마트폰 하나에도, 입는 옷 한 벌에도 말입니다.
커티스의 혁명은 왜 진짜 혁명이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커티스를 영웅으로 봅니다. 억압받던 꼬리칸 사람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커티스의 혁명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윌포드를 길리엄으로 바꾸려고 할 뿐, 열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커티스가 엔진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진실을 마주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기껏해야 '아이들을 꼬리칸에서만 뽑지 말고 머리칸에서도 공평하게 뽑자' 정도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겁니다. 이건 혁명이 아니라 권력 교체에 불과합니다.
윌포드가 정말 두려워한 건 커티스의 반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커티스를 후계자로 점찍을 정도였으니까요. 윌포드가 진짜 겁낸 건 남궁민수와 '얼어붙은 7인' 이야기였습니다. 밖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명제가 무너지면, 열차라는 세계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현실에서도 비슷합니다. 진짜 변화는 기존 권력자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 일어납니다.
남궁민수만 옆을 봤습니다
남궁민수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릴 때, 혼자서 옆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크로놀을 요구하며 문을 열려고 합니다. 열차 밖으로 나가려는 거하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저는 남궁민수가 그냥 마약쟁이 해커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는 유일하게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려는 인물이었습니다. 커티스가 '어떻게 열차를 더 공정하게 만들까'를 고민할 때, 남궁민수는 '왜 열차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를 질문했던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처럼, 열차는 모든 칸을 거쳐야만 앞으로 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궁민수는 그 규칙 자체를 거부합니다. 옆으로 나가버리면 됩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 눈 덮인 산 너머로 걸어가는 북극곰을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윌포드가 그토록 강조했던 '밖은 죽음'이라는 명제가 거짓이었던 겁니다.. 진실은 춥고 위험할 수 있지만, 그곳에만 진짜 자유가 있었습니다.
결국 설국열차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앞으로만 가는 혁명을 꿈꾸고 있는지, 아니면 열차 밖 세상을 상상할 용기가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제가 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열차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궁민수처럼 옆을 볼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