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위키드'는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사회적 차별과 정의,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 녹색 피부의 엘파바와 완벽한 외모의 글린다, 두 인물의 우정과 갈등은 단순한 감정선이 아닌 실존적 신념의 충돌입니다. 오늘은 영화 속 숨겨진 디테일과 인물들의 행동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분석하며, 이들의 선택이 어떻게 오즈 세계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엘파바의 춤이 가진 진짜 의미
클럽 파티 장면에서 엘파바는 글린다의 함정에 빠져 모두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이상한 모자를 쓰고 홀로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보면 굴욕적인 순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엘파바라는 캐릭터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엘파바는 어린 시절부터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자신을 놀릴 때도 울거나 주눅 들지 않고 마법으로 즉각 대응했던 그녀입니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가진 글린다 앞에서도 꿀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며 한 번이라도 이겨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글린다가 엘파바를 평생 무시당할 루저라고 생각했다면, 엘파바 역시 글린다를 허영심만 가득 찬 멍청이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 엘파바가 글린다의 거짓말에 속아 완전히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자존심과 체면이 박살 난 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그 사실도 모르고 모리블 교수에게 글린다도 마법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협상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완벽한 호구가 된 셈이었습니다.
여기서 엘파바가 선택한 것은 도망도, 분노도 아닌 춤이었습니다. 모자를 벗고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네가 아무리 나를 엿 먹여도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강력한 자아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글린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은 "너희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실존적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 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모리블 교수는 엘파바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오즈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엘파바는 예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면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써왔습니다. 이에 그녀는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 자신까지 속여가며 춤으로 모든 상처를 덮으려 한 것입니다.
엘파바의 이러한 행동은 글린다의 죄책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글린다는 모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엘파바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했고, 그 춤은 유행이 되어 클럽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글린다가 건넨 나름의 사과였고, 처음으로 자신의 편을 만난 엘파바는 글린다를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전설적인 우정이 시작됩니다.
| 상황 | 엘파바의 선택 | 숨겨진 의미 |
|---|---|---|
| 글린다의 함정 | 홀로 춤추기 | 자아 선언과 감정 통제 |
| 모두의 비웃음 | 무너지지 않기 | 정신적 승리 |
| 글린다의 동참 | 친구로 받아들임 | 진정한 우정의 시작 |
엘파바와 글린다, 선택의 갈림길
클럽 사건 이후 껌딱지처럼 다니게 된 두 사람이지만, 마지막 순간 글린다는 엘파바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미래를 응원하지만 결코 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인생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린다의 꿈은 마법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위대한 마법사가 된다는 것은 이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 권력층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글린다는 단순히 외모로 인기를 얻는 것을 넘어 자신의 능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사실 엘파바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에게는 숨겨야 할 가문의 수치처럼 여겨지고 남들의 멸시를 받던 엘파바 역시 모두에게 존경과 환호를 받는 오즈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핍박받는 동물들의 실상을 알게 되고 눈앞에서 딜라몬드 교수님이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 후, 엘파바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차별과 증오가 만연한 사회에 의문을 품고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이를 위해 녹색 피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고 오즈에게 동물들을 보호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으며, 끝내는 오즈의 정권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반면 글린다는 동물 권리 보호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길라몬스터 때문에 겁을 먹었을 뿐, 애초에 글린다는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글린다가 단순히 엘파바를 따르기 위해 별 관심도 없던 동물들을 위해 반역자의 길을 걷는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글린다가 할 수 있는 것은 친구가 잡히지 않도록 기도하며 험난한 싸움을 시작한 엘파바에게 행운을 빌어줄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사회적 신념과 실존적 선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엘파바는 글린다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길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즈의 파트너 자리까지 제안받았던 엘파바는 오즈를 배신하고 마법서 '그림머리'를 훔쳐 달아난 최악의 마녀로 몰리게 됩니다. 반면 글린다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도와 이 사회를 지켜나가는 착한 마녀로 거듭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마법의 재능이 전혀 없는 것처럼 묘사된 글린다가 어떻게 마녀의 자리에 올랐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소설을 살펴보면 글린다는 마법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오히려 엘파바가 마법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었습니다. 오즈 마법사에서도 글린다가 대마법사로 나오는 것을 보면 글린다에게 마법의 재능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영화에서는 뒤늦게 재능이 터진 것으로 나오거나, 오즈처럼 사실 마법은 잘 못 쓰지만 엄청난 기술력으로 대중을 속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도 같은 법이니까요.
글린다는 원하는 대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마법사가 되었지만, 실상은 사기꾼 오즈의 밑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진실을 알고서도 대중의 편에 서서 엘파바를 욕하고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글린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탄탄하지만 속은 공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아무튼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인생을 꾸려나간 글린다와 달리, 엘파바 때문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인물도 있습니다. 바로 피에로입니다. 피에로는 원래 남자판 글린다라 할 수 있습니다. 왕자라는 신분, 잘생긴 외모, 멋진 몸매까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얻을 수 있는 편한 인생이었습니다. 완전히 걱정 없는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면까지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피에로는 동물 차별과 같은 이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잘 알고 있었고 엘파바처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던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문제에서 눈을 돌린 채 가벼운 남자를 연기했습니다. 아마 피에로가 왕자였기에 일부러 민감한 문제와 거리를 두려 했던 것 같습니다. 왕족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피에로가 만약 동물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다면 오즈에게 찍혀 피에로를 비롯한 윙키 전체가 오즈 정권에 탄압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숨죽이고 살아왔던 피에로지만 남들에게 들킬 걱정이 없을 때는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정의로운 일을 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기 사자 구출 사건이 바로 그 예였고, 이때 어째선지 피에로는 엘파바의 수면 마법에 걸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피에로는 웬만한 마법은 튕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피에로가 정신을 바짝 차린 덕에 아기 사자를 무사히 구출했고, 이날 피에로의 본심을 꿰뚫어 본 엘파바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정의감의 불씨를 붙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히는 엘파바의 모습은 그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오즈의 정체와 동물 차별의 진실
영화의 최종 빌런인 오즈는 사실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 일반인이지만, 어째선지 모두에게 위대한 마법사로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오즈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었던 걸까요?
오즈는 사실 도로시와 같은 현대 세계 미국 캔자스 근처에 있는 하마라온 지역에서 서커스 일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크게 쓰인 열기구를 탄 채 서커스를 홍보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기구를 고정하던 줄이 끊어지면서 뜻밖의 하늘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 세계로 날아온 도로시처럼 그는 거대한 열기구를 타고 오즈 세계에 도착하게 됩니다.
범상치 않은 등장에 사람들은 그가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오즈를 시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들이밀었습니다. 오래전 이 땅을 지배했던 두 명의 대마법사가 남기고 간 마법서, 그림머리였습니다. 대마법사들은 오즈 나라의 혼란이 닥쳤을 때 이 책을 읽을 줄 아는 위대한 마법사가 나타나 세상을 구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기대에 찬 사람들 앞에서 오즈는 책을 보고 "오마하"라고 말합니다. 오즈는 그냥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한 것뿐이었지만, 오마하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오즈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그를 위대한 마법사로 떠받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오즈는 간단한 마술도 할 줄 알고 손기술도 좋았기에 대충 있어 보이는 장치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 덕에 오즈에 대한 소문은 점점 커져 이제는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신 같은 존재로 추앙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일반인이라는 것을 들킬까 봐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고 방 안에서 혼자 인형 놀이나 하는 히키코모리 아저씨였습니다.
사실 마담 모리블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오즈를 제치고 1인자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오즈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담 모리블을 동물 차별을 주도한 실질적 빌런으로 보면, 오즈는 단순히 전면에 내세운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모리블이 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즈 사회에 만연해 있던 동물 차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딜라몬드 교수님의 칠판에 누군가가 끔찍한 낙서를 써 놓고 간 것인데, "동물들은 구경거리일 뿐 말하지 말라"는 문구였습니다.
영화에선 정확히 이러한 짓을 저지른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 문구는 마담 모리블이 써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실 저 문구는 원작 소설에서 모리블이 학생들을 상대로 시 낭송회를 열었을 때 학생들을 선동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의 문구였습니다. 영화에선 모리블이 동물 차별을 주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지만, 소설에서는 초반부터 대놓고 동물들을 탄압하는 태도를 보이며 엘파바와 대립 구도를 세웠습니다. 영화가 소설과 내용이 완전히 다르긴 해도 소설에 있던 여러 설정과 요소들을 교묘하게 끌어와 각색한 것을 보면 아마도 저 낙서를 적은 범인은 모리블인 것 같습니다.
| 인물 | 겉모습 | 실체 |
|---|---|---|
| 오즈 | 위대한 마법사 | 서커스 출신 일반인 |
| 마담 모리블 | 존경받는 교수 | 동물 차별 주도 세력 |
| 글린다 | 선한 마녀 | 오즈의 꼭두각시 |
두 팔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소설과 달리 다리를 쓰지 못하는 인물로 나왔던 영화판 네사로즈입니다. 비록 그녀는 걷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네사로즈 자신의 다리를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도록 대학 입학 선물로 은색 구두를 선물하는데, 이는 엘파바와 네사의 어머니가 애용했던 구두였습니다.
이 구두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 세계에 떨어진 그날,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가 신고 있던 구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동쪽 마녀의 정체가 바로 네사로즈였습니다.
위키드는 선한 남쪽 마녀인 글린다뿐만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다 보면 마치 퍼즐을 맞추듯 오즈의 마법사와 연결된 설정들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령 영화에서 오즈가 대륙 전역에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 벽돌길을 계획했던 내용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노란 벽돌길을 따라 랜드에서 에메랄드 시티까지 갔던 것을 보고 만들어낸 설정이었습니다. 에메랄드 시티를 지키고 있던 파란색 원숭이 부대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서쪽 마녀를 구하러 나왔던 그 원숭이 부대입니다.
마법의 힘으로 처음 날개가 생겼을 때는 마담 모리블의 선동에 휘말려 엘파바를 죽이려 들더니 나중엔 오히려 엘파바를 도와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며 마법의 부작용으로 지성을 아예 잃어버렸거나 자신에게 마법을 건 엘파바를 완전히 주인으로 섬기게 된 것 같습니다.
영화는 동화 말고도 1930년대에 나왔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따온 점들도 많습니다. 일단 이 공주공주한 글린다의 의상과 초록색 피부의 검은 모자, 빗자루를 든 엘파바의 디자인이 영화와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올바르게 고증이 잘된 영화입니다.
위키드는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사회적 차별, 정의,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은 감정적 유대를 넘어 실존적 신념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엘파바가 비웃음 속에서도 홀로 춤을 춘 것은 자아 선언이었고, 글린다가 그 춤에 동참한 것은 진정한 우정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마담 모리블을 중심으로 한 오즈 세계관의 정치적 부조리는 현실 사회의 권력 구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작품에 깊이를 더합니다.